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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방직후 금융가 무슨 일 벌어졌나 (펌)

작성일 2005.08.13 12:52 | 조회 4,635 | 푸른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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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직후 금융가 무슨 일 벌어졌나

'패망' 일본인들 은행으로… 예금인출사태 첫 '금융대란'
총독부 '지급유예' 대신 새돈찍어 재산반출 도와
한달새 물가 20배 폭등
김홍수기자 hongsu@chosun.com

입력 : 2005.08.11 18:04 09' / 수정 : 2005.08.11 18:08 58'


1945년 8월 15일, 당시 조선에 살던 71만명의 일본인들은 항복을 선언하는 일왕(日王)의 육성방송을 들으며 통곡하다 말고 앞다퉈 은행으로 달려갔다. 은행 창구는 돈을 빼돌리려는 일본인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우리은행 은행사(史) 박물관이 최초로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해방 직후 금융대란(大亂)’ 상황을 살펴본다.

◆금융패닉… 화폐발행 2배로 급증


당시 조선은행권은 일본에서도 일본화폐와 1대1로 교환해 쓸 수 있었다. 일인들이 해방 직후 대출까지 일으키며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일인들의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당시 조선총독부는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 조폐국에서 새 돈을 찍어 공수하고 그마저도 바닥나자, 서울의 조선서적인쇄공장에서 돈을 추가로 찍어내 일인들의 현금반출을 도왔다.


그 결과, 조선은행의 총 발행액(화폐발행량)은 7월 말 47억원 수준에서 9월 말 87억원으로 두 달 새 2배 가량 늘어났다. 증가분 40억원은 당시 가치로 쌀 700만석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액수.


일인들은 또 무정부 상태를 십분 활용해 광복 후 45일간 각 은행에서 2억5000만원을 새로 대출받아 돈을 빼돌렸고, 일본으로 송금한 돈만 7억원에 달했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임승융 학예연구사는 “엄청난 통화량 팽창으로 광복 후 한 달여 만에 물가가 20배로 뛰었다”고 말했다.




▲ 조선총독부가 일본인들의 예금인출을 돕기 위해 광복 이후 새로 찍어낸 조선은행권

◆휴지조각으로 변한 일본국채


일제가 전쟁비용 조달 목적으로 조선의 은행들에 강제로 떠 안겼던 일본 국채, 일본 군수산업체의 회사채는 패망 후 휴지조각으로 변해 은행에 엄청난 부실을 안겼다.


당시 조선상업은행(현재 우리은행) 대차대조표를 보면 전체 자산 23억원 중 일본국채와 정부기관 사채가 2억7000만원에 달했다.


당시 은행들이 보유했던 일본 국채는 대일청구권 보상대상에서도 빠졌다. 조선상업은행은 이어 분단으로 인해 북한지역 은행지점(전국 점포 65개 중 27개) 재산을 모두 몰수당해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었다.


임 연구사는 “광복 직후 일인들의 금융침탈과 분단으로 은행이 부실화되자, 미 군정 당국은 은행 지점의 30%를 일시에 폐쇄하는 등 우리 역사상 최초의 금융권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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