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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日 '왜곡 교과서' 인터넷 공개...'인종차별'까지

작성일 2005.08.29 03:11 | 조회 5,644 | 푸른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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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왜곡 교과서' 인터넷 공개...'인종차별'까지


관련링크 : http://feature.media.daum.net/society/article01773.shtm



'www.je-kaleidoscope.jp'에서 한국어판을 선택하면 맨아래 오른쪽에 후소샤교과서를 볼 수 있다.[자료=je-kaleidoscope 화면 캡쳐]

일 외무성 “한·일 주변국 오해 풀기 위해…”
실제 내용은 ‘유색인종’ ‘백인제국’ 등 인종차별까지

미디어다음 / 김준진 기자

일본 극우세력 ‘새로운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의 후소샤(扶桑社) 역사교과서를 에이메현에서 지난 번에 이어 또다시 채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 한일 역사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후소샤교과서를 일본어를 모르는 국내 일반인들도 읽어 볼 수 있는 인터넷사이트가 열렸다.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교과서가 가지는 인종차별의식 등 여타 문제점들도 새롭게 발견돼 주목된다.
“후소샤 교과서 포함 일본 역사교과서 8종 모두 공개”

일본 외무성이 내년부터 일본 내 중학교에서 사용되는 8종류의 교과서를 ‘JE Kaledoscope’(www.je-kaleidoscope.jp, 일본 이해를 위한 정보사이트)사이트에서 지난 24일부터 공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이트에서는 새역모의 후소샤판 역사교과서를 비롯, 일본 내 모든 역사교과서를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로 번역해 놓았다.

이미 번역됐거나 앞으로 계속 번역될 내용은 일본의 에도시대 말기부터 메이지유신 이후의 근대에서부터 현대까지. 20세기 초 일본의 한반도 식민통치와 중국 침략에 관련한 것들도 모두 포괄하고 있다. 후소샤 교과서 내용 중에서는 ‘제4장 근대일본의 건설’과 ‘제5장 세계대전 시대와 일본’ 부분이 번역됐다. 하지만 이 부분도 아직까지 완역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일본 외무성이 번역을 위탁하면서까지 역사교과서 8종을 모두 인터넷사이트에 공개한 것은 한국과 중국 등 일부 국가들이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게대전 당시 일본의 군사적 침략을 미화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


‘유색인종’ VS ‘백인제국’…인종차별까지

그러나 후소샤 교과서의 내용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후소샤 중학사회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조선이 청에 조공을 바쳐야만 하는 나라로 묘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도 전후 미국의 요청에 의해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라는 표현 대신 태평양전쟁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됐던 것이라며 교과서 전반에 걸쳐 ‘대동아전쟁’이라는 용어만 쓰고 있다.

또 오랫동안 식민지배에 시달리고 있던 아시아에게서 서구세력을 몰아낸 것이 바로 일본이라며, 종전 무렵 일본 국민의 생활이 궁핍하고 어려웠어도 참고 이겨낸 것은 모두 이 같은 전쟁의 승리를 바란 데서 나온 것이었다고 적고 있다. ‘유색인종’과 ‘백인제국’이라는 표현도 스스럼 없이 사용해 인종차별적 식견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2차 대전 종전 후 전범처리를 위해 열렸던 도쿄재판을 언급하면서도 유일하게 전범들 전원 무죄를 주장했던 인도 펄 판사의 견해를 맞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그 당시까지 전쟁 개시를 죄목으로 도조 히데키 수상을 비롯해 핵심 국가 지도자 7명을 교수형에 처하는 등의 판례가 국제법 역사에 없었고 이에 법적 근거의 결여로 무죄라는 논리다.


“후소샤 교과서 채택률 부진은 한일 시민사회의 승리”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양미강 상임위원장은 “일본 외무성이 이런 방법으로 교과서를 공개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바람직하다”며 “후소샤 교과서가 가진 왜곡된 역사관은 지난 2001년 검정본에 이어 올해 검정본 역시 마찬가지다”고 평했다.

양위원장은 “26일 에히메현에서 교육위원 6명이 만장일치로 후소샤 교과서를 또 채택했다”며 “처음 예상했던 채택률 10%에 비해서는 현재까지 전체 채택율이 저조한 편이지만 구마모토현 등 위험 지역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계속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전국 582개 교과서 채택지구 가운데 후소샤 교과서 채택률이 1%에 이르면 그 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생수는 1만3천여명 정도가 된다. 지금까지 후소샤판을 채택한 지구는 도쿄도 스기나미구 중고일관학교와 양호학교 등 특수학교, 도치기현 오타와라시 시립중학교, 에히메현 중고일관교와 양호학교 일부 등으로 학생수는 7000명 안팎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양위원장은 “후소샤 교과서 채택 저지를 호소하는 의견광고를 일본 일간지에 싣기 위해 지난 7월4월부터 8월15일까지 했던 국민모금운동은 총 6억7266만2297원이 모였다”며 “채택률이 높다고 판단했던 지역 위주로 모두 14번의 의견광고를 내는 등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의견광고’ 형식이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한국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리는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는 판단이다. 이는 결국 한일 시민사회 성금모금과 캠페인 등 유기적으로 연대했던 것이 후소샤 교과서 채택률을 떨어뜨린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


인터넷사이트에서 발췌한 후소샤 중학사회 역사교과서의 주요 내용은...

“조선을 개국시킨 1876(메이지9)년의 일조수호조규(日朝修好條規)는 제1조에서 조선국은 자주국임을 표명했다. 이는 청조의 영향으로부터 조선을 분리하고자 하는 의도였다…(중략)…조선을 둘러싼 일청 대립 간에 청은 마지막 유력한 조공국인 조선만은 잃지 않고자 일본을 적으로 간주하게 됐다. ” 교과서 제4장 3절 ‘조선반도와 일본’ 칼럼 중

“일노전쟁은 일본의 생존을 건 전쟁이었다. 이 전쟁의 승리는 근대국가로서 태어난지 얼마 안 되는 유색인종 국가인 일본이 당시 세계 최대의 육군 대국이었던 백인제국 러시아를 이긴 것은 식민지가 되어 있던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준 것이다.” 교과서 제4장 3절 58. 일노전쟁 내용 중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하고 이 전쟁은 ‘생존과 지기방어’를 위한 전쟁이라고 선언, 이 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고 명명했다…(중략)…미국과 영국에 대한 개전(開戰)을 뉴스로 전해들은 대다수의 일본 국민은 그 후 잇달아 전해지는 전과(戰果)에 도취됐다.” 교과서 제5장 2절 74. 진주만 공격 내용 중

“일본군은 오랫동안 아시아 각국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서구의 세력을 몰아내고 도저히 백인을 이길 수는 없다고 체념하고 있던 아시아 민족에게 경이로운 감동과 자신을 주었습니다.” 교과서 제5장 2절 75. 말레이시아 독립운동가 전 상원의원 라자 다트 논칙의 저서 인용

“전쟁말기 물질적으로 모든 것이 부족해 절의 종 등 금속이라는 금속은 모두 전쟁을 위해 공출되었고 생활물자는 궁핍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국민들은 잘 일하고 잘 싸웠다. 그것은 전쟁의 승리를 바란 데서 나온 행동이었다.” 교과서 제5장 2절 76. 전시 하의 생활 내용 중

“도쿄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는 전범으로 심판된 전쟁 중의 지도자들 전원에게 유죄가 선고됐고 도조 히데키 수상 이하 7명이 교수형을 받았다…(중략)…도쿄재판에서 유일한 국제법 전문가였던 인도의 펄 판사는 이 재판은 국제법상의 근거가 결여돼 있다며 피고 전원에게 무죄를 주장했다.” 교과서 제5장 3절 78. ‘도쿄재판에 대해 생각하다’ 칼럼 중

인터넷사이트에 일부 공개된 후소샤 교과서의 전체 내용 등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역사교육연대(02-3672-4192)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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