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스스로 목숨 끊고, 독한 술 많이 마시고
작성일 2005.11.04 12:03
| 조회 5,047 | 푸른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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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숨 끊고, 독한 술 많이 마시고
2005/11/03
글 : 양재찬_월간중앙 편집위원
한강(漢江) 하면 우리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개발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곳을 ‘한(恨) 많은 강’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서울경찰청 자료를 보면 매일 1.3명이 한강에 투신한다니 세상을 등진 이도 그렇지만 남은 가족들은 더욱 그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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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도시의 상징인 지하철도 이따금 자살하려는 이들에게 죽음을 맞는 장소로 선택당한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 1∼8호선 투신자가 59명이었다. 심각성을 인식한 지하철공사가 승강장에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고 나섰다.
지난해 이런저런 이유로 자살한 사람은 모두 1만1,523명. 인구 10만 명당 25.2명꼴이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1위다. 자살률이 높은 헝가리(22.6명)·일본(18.7명)·핀란드(18.4명) 등을 훨씬 넘어서는 숫자다. 하루평균 3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이쯤 되면 어디 가서 코리아가 G10(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고 자랑하기가 민망해진다.
지난해 자살률은 10년 전(1994년 10.5명)에 견줘 2.4배나 늘어났다. 이 무렵만 해도 자살은 사망 원인 9위였는데 지난해 4위로 올라섰다.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10만 명당 17.2명)보다 많다.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자살을 시도한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전체 자살자를 연령대로 나눠 보면 40대가 21%로 가장 많다. 한창 일할 나이인 30∼50대가 전체 자살자의 62.7%에 이른다. 가장의 짐을 지고 있는 이 연령대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의 두세 배에 이른다. 이는 ‘사오정(45세 정년)’이니 ‘38선(38세 명예퇴직)’이니 하는 유행어와 연결된다. 집에서는 아내와 자식들 등쌀에 허리가 휘고, 밖에??직장 상사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 눈치를 보느라 지친 군상이다.
연령대별 사망 원인을 보면 40대 이상은 암이 1위인 반면 20~30대는 자살이 1위다. 젊기 때문에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적다는 점을 감안해도 자살이 사고사를 제치고 1위라는 점은 구직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희망을 걸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항변 아닐까?
스트레스와 좌절, 압박감은 음주 행태에도 영향을 주는가? 한국인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독한 술(毒酒)을 많이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 음주실태 보고서(장근호 홍익대 교수)를 보면 국민 1인당 한 해에 마시는 소주·위스키 등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는 2002년 기준 4.5ℓ로 러시아(6.5ℓ)·라트비아(5.6ℓ)·루마니아(4.7ℓ)에 이어 세계 4위다. 한국인의 독주 음주량이 많은 것은 20도가 넘는 소주를 많이 마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3년에는 열다섯 살 이상 국민이 1인당 소주 68병을 마신 것으로 집계됐다. 10명 중 4명은 일단 마셨다 하면 소주 한 병 이상으로 과음하는 편이다. 술을 마시는 여성의 비율도 1986년 20.6%에서 2003년 49.0%로 크게 높아졌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이 같은 통계는 바로 고단한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3만 달러 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다운 삶인데 자살대국에 독주 음주 4위 국가라니…. 이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와 지역사회가 나설 때다.
가을이다. 단풍이 참 곱다 했는데 어느새 낙엽이 떨어진다.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계절이다. 자칫 독한 술을 더 찾고 자살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들수록 따뜻한 가슴으로 가정과 이웃을 돌아보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