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태어나자마자 강물에 내다 버릴 만큼 그렇게 내가 끔찍했습니까?’ 엄마 서화를 향한 한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던 강치의 눈물겨운 질문이었다.
한없이 미웠고 한없이 원망스러웠지만, 또한 한없이 그립기도 했던 어머니 서화. 대답을 듣기 전에 이미 강치의 눈시울은 잔뜩 붉어져 있었다.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던 서화였다.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강치를 바라볼 뿐이다.20년 만에 만난 아들을 부둥켜안고 ‘내 아들아’ 부르짖을 수도 없다.태어나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 아들을 돌봐주지 못했던 어미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가. 서화는 강치를 보며 그렇게 자책하는 듯했다.강치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도 없었다.어미 노릇도 못한 자가 어찌 자식 앞에서 울며불며 매달릴 수 있냔 말이다.서화는 그저 치맛자락을 콱 움켜쥐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물을 속으로 삼킬 뿐이다.
뒤돌아서는 강치를 보면서도 그의 이름을 부를 수조차 없는 어미다.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굵은 눈물을 떨구며 제 가슴팍을 모질게 친다.억장이 무너지고 비통함이 폐부를 찌르는 순간이다.윤세아는 이 장면을 야무지게 소화해냈다.강치와 마주 선 장면에서 슬픔을 견디는 표정,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이 점점 커져가는 모습, 눈물을 보이되 흘리지 않고 머금고만 있어야 하는 순간, 강치가 떠난 후 참았던 슬픔을 토해내며 숨을 몰아쉬는 연기 등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게 그려냈다.
이뿐만이 아니다.윤세아는 강치를 처음 대면한 서화의 모습에서도 비장할 정도의 연기 카리스마를 뿜어냈다.서화는 쇠사슬로 포박당한 강치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지만 이 상황이 조관웅의 모략으로 인해 꾀해진 것임을 알고는 강치를 애써 외면해야만 했다.서화를 시험하려는 조관웅의 야비한 술수에 넘어갈 수만은 없었으니까. 서화는 강치를 앞에 두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말들로 조관웅을 상대했다.‘사람도 뭣도 아닌 저 아이를 밟아 죽이든 비틀어 죽이든 그건 비조 영감이 알아서 하실 일! 내가 필요한 것은 오로지 지도뿐입니다.아시겠습니까!’ 서화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순간이었다.다시 한 번 자신의 아들을 제 입으로 버려야 하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이 장면에서 윤세아는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연기 중에서 최고를 보여주는 듯했다.
서화가 지녔어야 할 이중적 감정을 거침없이 전달하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서화 캐릭터에 빠져들게 했다.그녀의 분노는 야멸찼지만 반대로 시리도록 슬펐다.독하고 모질었지만 그 안에는 애틋함과 비통함이 함께 서려 있었다.연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대사가 없었던 순간에도 윤세아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조관웅의 비정함에 치를 떠는 모습, 슬픔을 견뎌가며 이를 악물고 자식을 내쳐야 하는 모습이 그녀의 떨리는 입술 하나에 그대로 표현되었다.악을 쓸 때 이마에 솟은 핏대는 조관웅을 향한 울분이었고 강치를 향한 절규였다.‘엄마가 미안해!’ 윤세아는 이 표독스러운 연기에서 어미의 미안한 마음까지 슬며시 비추어주었다.
처음 서화 역은 이연희의 연기로 시작되었다.구월령과의 인연, 사랑, 강치를 출산하고 조관웅으로부터 죽음을 당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이연희가 그려냈다.3회 분량이 그녀가 연기한 전부였지만 이연희는 그동안 한번도 없었던 칭찬을 듣게 되었다.연기력 논란으로 말이 많았던 이연희에서 배우로서의 가능성이 높아진 이연희로 거듭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는 윤세아에게 서화 역이 맡겨지게 되었다.윤세아의 서화는 이연희의 서화보다 분량도 많고 비중도 높다.이제 서화라는 캐릭터는 단순한 주변 인물로만 그치지 않는다.서서히 극의 한 축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다.그럴수록 서화 역에 더 깊고 강한 연기를 요구하게 되는데, 이에 윤세아는 그 요구를 충실하게 잘 따라주고 있다.
사실 하나의 역을 두 사람의 배우가 연기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자칫 이야기의 맥이 끊어지면서 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아역 연기자와 성인 연기자가 주인공 한 사람의 삶을 연결해서 연기하는 경우도 말이 많고 민감할진대, 하물며 두 성인 연기자가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겠다니, 이를 어색하고 껄끄럽게 바라보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구가의 서’의 서화 역에 윤세아와 이연희가 2인 1역을 한 것에 대해서만큼은 드라마를 위해서도 연기자들을 위해서도 좋은 시도였다고 본다.솔직히 후반에 다시 등장하게 된 서화 역은 이연희에게는 무리다.상상해 보면 아찔하기만 하다.윤세아의 연기를 보면서 이연희라면 불가능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만약 이연희가 계속해서 서화 역을 맡았다면 어쩌면 또 다시 악플의 주인공으로 등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연희는 짧고 굵었지만 초반에 서화라는 캐릭터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는 역할에 충실했다.그리고 윤세아에게 바통이 넘어가면서 서화는 더욱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로 그려지게 되었다.그러면서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의 변화까지 표현해내야 하는 역할로 파이가 커져가고 있는데 윤세아는 아직까지도 상당히 여유 있게 서화를 소화해내고 있다.윤세아의 서화는 이연희의 서화보다 훨씬 안정되어 있고 또한 믿음직스럽다.남이 하던 역할을 떠맡아 중간에서 이어붙이기를 하는 경우에는, 그동안의 이야기 흐름과 전 배우가 했던 연기를 꼼꼼하게 잘 봐두어야 하는데 윤세아는 여기서도 합격점이다.가끔씩 이연희의 표정과 흡사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볼 때면 역시 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이 연기할지언정 서화는 하나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 게다.바통을 잘 전달했고 잘 이어 받았다.다소 위험해 보이는 2인 1역 연기에 좋은 예를 남긴 두 여배우, 윤세아 그리고 이연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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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좋은예맞네요 ㅋㅋ
표정도 똑같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