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임신 중기 때 유럽 여행 다녀왔어요.
그 때 갔던 예쁜 마을인 부라노 섬을 소개합니다.
부라노라는 이름의 섬
이탈리아 베니스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섬은 무라노이겠지만 이제 더이상 부라노 섬도 낯선 이름은 아니지요. 베니스 본 섬에서 무라노보다 더 멀지만 바다를 가로지르는 수상버스 바포레또를 타고 부라노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라노나 부라노 두 섬 모두 그리 크지 않은 크기이기 때문에 아침을 먹고 나서서 두 섬을 모두 둘러보고도 저녁 시간은 온전히 다른 곳에 쓸 수 있지요. 무라노에 부라노, 리도섬까지 둘러보는 부지런한 분들도 있을 정도니 일정이야 조절하기 나름입니다.
비 온 뒤
5월, 유럽의 날씨가 점점 좋아지는 그 좋은 달에 날씨 좋기로 유명한 베니스에서 때아닌 비를 만났어요. 여행의 피로와 나른한 게으름이 비를 만나 하루를 꼬박 내리는 비 소리를 들으며 숙소에서 뒹굴고 나니 다음날엔 해가 반짝 뜨지 않았겠어요? 아침을 챙겨 먹고 느긋하게 길을 나섭니다. 부라노를 만나러 갑니다.
해가 쨍쨍 뜬 부라노에는 원색의 아름다운 집들이 있고 바래가는 페인트에서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색색의 우산과 색색의 빨래들이 눈부시게 말라가고 있어요. 다음날 또 비가 왔는데 그럴 줄은 몰랐겠죠. 어찌될지도 모르면서 꽃을 피운 들풀같이, 싱그러움이 코 끝을 스칩니다.
우리네 인생이 어디서나 이와 같지 않을까요. 또 비가 내릴 줄은 알면서도 오늘은 빨래를 해서 빨래 줄에 겁니다. 또 바람이 불 줄을 알면서도 창가에 꽃을 내어 놓습니다. 가까이서 비루해 보일지라도 멀리서 형형색색 빛나는 부라노의 건물처럼 남루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당신의 삶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지요.
부라노 섬의 토산품
베니스, 하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운하와 곤돌라겠지요. 다시 베니스, 두 번째로 들으면 당신은 화려한 가면을 쓰고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바로 베니스의 카니발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베니스에서는 다양한 크기, 다양한 색상, 다양한 디자인의 가면을 만날 수 있습니다. 꽃 장식도 있고 전체를 가릴 수 있는 가면도 있고 동물 모양의 가면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깃털 장식의 가면들이 제 맘에 쏙 듭니다.
가면이 본 섬과 무라노에서도 볼 수 있는 무난한 토속품이라면 부라노만의 독특함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바로 이 레이스 제품들입니다. 부라노가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형형 색색의 집들도 한 몫을 했지만 뭐니뭐니해도 정교한 레이스 제품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한참 어렸을 때 레이스 제품들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어요. 부유한 가정의 상징 하면 유리가 있는 4인용 식탁의 유리 아래로 하얀 천에 자수가 들어간 레이스 천을 까는 것인 적도 있었을만큼. 청명한 하늘 빛이 하얀 레이스에 닿아 세세한 장식 하나 하나를 빛내줍니다.
운하가 있는 풍경
베니스의 섬 답게 부라노에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잔잔하고 아름다운 운하를 만나게 됩니다. 물이 그다지 맑지 않아도 부라노에서라면 바다로 이어지는 운하들을 따라 한참이라도 걷고 싶어진다죠?
낡은 듯 화려한 듯 집들 사이로 유유히 운하는 흘러갑니다. 그 위에 색색을 칠한 작은 배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죠. 버려진 듯 하지만 주인이 부릉 시동을 걸면 언제든지 바다를 향해 비상할 수 있는 놈들입니다.
배를 점검하는 베레모 아저씨 옆으로 섬을 찾은 사람들도 섬에 사는 사람들도 부지런히 자기의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햇살의 섬 부라노
아이가 맞추어 놓은 레고 조각인양 천연의 색색을 자랑하며 집들은 바다의 냄새를 맡습니다. 내리쬐는 햇살에 기지개를 켜고 분주히 손님들에게 포즈를 취해 줍니다. 비가 더럽고 어두운 모든 것을 씻어가고 난 뒤, 햇살로 일광욕을 하는 부라노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대비를 맞추지 않고 차가운 색, 뜨거운 색 구분 하지 않아도 저마다 원하는 색을 칠해도 이마만큼 아름답게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부라노는 알고 있습니다. 주변에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서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것을 부라노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저다운대로 햇살 아래 부라노는 아름답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