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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비디오 틀어준다고 영어가 늘까?

작성일 2013.07.25 21:08 | 조회 893 | 아침햇살용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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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 아이 영어공부 로드맵

학부모 특강에서 "굳이 어려서부터 영어를 시킬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강의를 마치면, 강연 말미에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 덕분에 나름 소신이 생기네요. 그런데, 그래도 집에서 영어 비디오나 영어 노래 카세트 등을 배경 음악처럼 깔아 주면, 아이가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게 되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물론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아래의 논리로 생각해 보면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있다.

◇ TV만 본 청각장애인 자녀의 언어 습득

언어 습득 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논문이 있다. 청각 장애가 있는 부모가 정상적인 청력을 가진 자녀들에게 언어 자극을 주기 위해 몇 년 동안 열심히 TV를 틀어줬다. 그런데, 이후 이 TV를 통한 언어 자극을 받은 아이들은 정상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어휘의 수나 언어 구사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단순히 기계적인 언어 자극만 준다고 아이의 언어 능력이 발달하지 않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연구 결과이다. 언어 습득 과정에서 단순히 언어 자극을 넘어 사회 정서적인 교감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투입(Input)이냐, 수용(intake)이냐?

언어 습득 이론에서 자주 이야기 되는 것이 '투입(input)이 중요하느냐, 수용(intake)이 중요하느냐'이다. 많은 초기 언어학자들이 모국어 습득 과정을 연구하며, 외국어도 언어 자극에 많이 노출되면 저절로 언어를 습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Input을 강조하는 이론이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이 말한 대로 많은 input을 주었지만 여전히 언어습득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결과에 직면한다. 어느 정도 잠복기가 지나면 모국어를 배울 때처럼, 제2언어도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리라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이론이 input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고, input보다는 내가 받아들이는 intake 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질적인 input의 좋은 예는 영어가 필요한 환경 속에 가서 생활해보면서, 손짓 발짓 해가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영어를 쓰고, 그 상황에서 언어적인 자극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배경으로 영어 비디오를 깔아주고, 영어 노래를 틀어주는 것보다 좋은 것은 영어 캠프이고, 그것보다 더 낳은 것은 영어권 나라에서의 여행이다. 그런데 후자는 모두 돈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실질적 대안으로 필자가 자주 건의하는 것이, 영어책, 카세트, 비디오 살 돈이나 아이들 영어 유치원이나 영어 학원에 보낼 돈을 모아서, 가족들과 같이 영어권 국가 여행을 가보라는 것이다.



0~3세 혹은 초등학교 가기 전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 자극이 아니라 바로 부모와의 애착과 앞으로 영어를 비롯한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대뇌의 자극이다. ⓒ베이비뉴스

◇ 아직도 타갈로그어가 서툰 나

개인적으로도 필리핀의 국어라고 할 수 있는 타갈로그어를 배우며 언어 습득에서 input과 intake의 차이와 intake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필리핀은 여러 섬으로 이뤄지고, 각 섬마다 방언이 다르기 때문에 영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한다. 그러다 최근에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조되며 마닐라 부근에서 사용하는 타갈로그어가 일상과 교육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나름 영어는 원어민 수준을 하고, 일본어는 고등학교 때, 중국어는 대학 때 배워서 일어, 중국어로도 간단한 회화가 되기에, 많은 분들이 나를 언어적 재능이 탁월한 사람으로 착각한다.

그런데 필리핀 노동자들을 15년 넘게 도우면서, 수많은 타갈로그 환경에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타갈로그 실력은 여전히 몇 마디 하는 수준이다. 몇 년 전에 마음먹고 타갈로그 문법을 하루 날 잡아 훑어 본 후 대충 어떤 구조로 말하는지 감은 잡았지만, 이후 공부하지 않으니 여전히 대충 눈치로 알아듣는 수준이다. 영어로 충분히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에 굳이 타갈로그는 배울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다. 간단히 '살라맛 포'(감사합니다.) '마라미 마싸랍'(아주 맛있어요) 등 사교적으로 필요한 표현만 외워서 그때그때 사용하고 있다. 아무리 많은 언어 노출이 있어도 내가 의지를 가지고 배우려 하지 않는 한 새로운 외국어는 배워지지 않는 게 자연의 순리이다.

◇ 사전을 베고 자면 단어가 외워지고, AFKN를 줄곧 틀어놓으면 어느 날 귀가 뚫릴까?

아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영어 자극에 노출 시키는 것은 마치 사전을 베고 자면 단어가 외워지고, AFKN만 틀어놓으면 귀가 뚫려서 영어 청취가 잘 될 것을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전을 베고 잤는데 단어가 외워졌다면, 깨어 있는 동안 단어를 외웠기 때문이다. AFKN을 틀어 놓았는데 점점 청취력이 늘었다면, 틈틈이 영어 공부를 다른 시간에 했고, 자신이 공부한 내용이 마침 방송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어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동기 부여도 안 된 아이에게 비디오로 카세트로 열심히 영어 자극을 주어도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이다. 엄마가 하지 않아도, 어린이 집에 가면 벌써 ABC 노래 불러야 하고,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수업 시간에 회화하고 영어로 춤추고 노래해야 한다. 이런 자극을 경험하고 본인이 욕심이 생겨서 더 하고 싶다면 그 때 책과 비디오를 더 사주고, 학원에 보내도 늦지 않다.

◇ 언어 자극은 언어 자체만 아니라, 사회 정서적 자극과 같이 주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어적 자극에서 간과되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청각장애가 있는 부모를 둔 아이가 TV만 보고, 언어를 제대로 못 배웠다는 연구 결과는 언어 습득에서 언어 자극 이외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음을 시사한다. 모국어를 습득할 때 아이가 1~2년 동안 언어 자극을 받고, 말을 시작하는 것은 언어 자극만 주어진 게 아니라 말과 함께 부모와 형제의 사랑과 감정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카세트로 "밥 먹어", "밥 먹어"라는 언어 자극만 주면 아이는 언어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사랑스런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면서, 숟가락을 들어 밥을 권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는 '밥 먹어'라는 언어를 총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이에게 영어 동화책을 읽어 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읽어 줄 때 가장 큰 자극은 지적 자극이 아니라, 엄마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는 사랑의 감정과, 정서적 교감이다. 큰 욕심 없이 아이와 같이 하는 하나의 놀이로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엄마가 늘 공부하고, 영어를 배우려는 모습을 보여주면 때가 되면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0~3세 혹은 초등학교 가기 전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 자극이 아니라 바로 부모와의 애착과 앞으로 영어를 비롯한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대뇌의 자극이다. 그리고 그런 자극은 앉아서 단어를 외울 때보다 오감을 활용한 놀이와 운동을 통해 더 많이 얻어질 수 있다.

*참고 문헌

H.D. Brown, Principles of Language Learning and Teaching, 5th edition.

H.D. 브라운, 이흥수 등역, 외국어 학습 교수의 원리(5판), 피어슨 에듀케이션 코리아, 2007.
(이 책은 영어 교육과 사람이라면 다 보고, 임용고시 필독서인 영어 교수이론 기본서 입니다. 여기에 영어 학습에 대해 궁금해 하는 원리가 거의 다 나와 있습니다. 좀 전문적이기는 하지만 영어 교육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 공부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심정섭은 자연출산, 자연교육 교육컨설팅 전문 더나음 연구소 대표이다.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영어교육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강남에서 영어 강의를 하며 자연출산과 자연교육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안철수 공부법', '스무 살 넘어 다시 하는 영어'가 있고, 공역서로 '평화로운 탄생, 히프노버딩'이 있다. 더나음 연구소 카페( http://cafe.naver.com/birthculture)와 더나음 연구소 홈페이지(www.thenaumhouse.com)를 운영하고 있다.

 

 

베이비뉴스

 

정서적 교감이 중요하죠..

아이 영어 교육 전에 내가 먼저 공부해야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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