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유관순 소꿉친구 남동순 할머니의 이야기
[손주에게 들려주는 광복이야기] 유관순 소꿉친구 남동순 할머니
“고문당하고 죽은 관순이 원수갚으려 교복입은채 ‘7인의 결사대’ 들어갔지”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
입력 : 2005.08.13 04:34 43'
“해방? 생각도 못했지. 14일 밤에도 난 작전 중이었어. 일본 주재소에 잡혀간 동지를 꺼내오는 일이었지. 이튿날 우리나라가 해방됐다는 뉴스가 나와 뒤로 벌렁 자빠졌어. 가회동 집에서 맨발로 뛰쳐나가 종로까지 달려가면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어. 내 나라, 아니 내 동무 관순이의 나라가 사무치게 자랑스러워서….”
올해 103세의 ‘여전사’ 남동순(南同順) 할머니의 음성은 쩌렁쩌렁했다. 분꽃 흐드러진 화단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소나기에도 아랑곳없었다. 신익희(申翼熙) 선생이 3·1운동 직후 결성한 독립운동단체 ‘7인의 결사대’의 홍일점으로 중국, 연해주, 몽골을 바람처럼 누볐던 여성 독립군. 유달리 목소리가 큰 까닭은 귀가 일찌감치 어두워진 탓도 있었다.
“3·1 만세운동 때 서대문 형무소에 끌려가 일본놈들한테 매섭게 맞아 그렇지. 같이 운동한 사람들 이름을 대라고 콧구멍에 고춧가루물을 들이부어도 절대 안 댔어. 그 죽일 놈들이 내가 이름을 대도 때리고 안 대도 때릴 게 뻔하거든. 나 하나 죽으면 그만이다, 하고 이를 악물었지.”
그는 3·1만세운동으로 순국한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의 소꿉친구이자 이화학당 동창이다. ‘두(二)순이’로 불릴 만큼 절친했던 두 사람은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서도 서로를 격려했다.
그의 기억에 유 열사는 “새암(샘) 많고 차지고 영특하기 그지없는 소녀”였다. “열아홉이면 얼마나 이쁠 때야. 그런데 사지가 찢어지도록 고문을 당하고 죽었으니 불쌍하고, 용감하지. 죽기 직전까지 관순이는 ‘너희 놈들 쫓겨갈 날 멀지 않았다’고 외쳐댔어. 동무를 그렇게 보낸 게 한이 맺혀 교복을 입은 그대로 7인의 결사대로 들어간 거야.”
광복 이후엔 고아들을 돌보며 평생 독신으로 산 할머니는 서울 우이시장 골목에 있는 50년 된 ‘국민주택’에서 살고 있다. 인터뷰는 낡은 선풍기 한 대 탈탈 돌아가는 이 검박한 집에서, 그리고 서울 정동 유관순 기념관에서 두 차례 이뤄졌다. 모교 후배인 이화여고 1학년 오샛별·이지윤양과 하지연(동의대 신문방송학과 4년) 조선일보 인턴기자가 함께 했다.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508/2005081300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