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은 며느리

작성일 2024.05.04 00:18 | 조회 79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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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시어머님은 재일교포이십니다.
한국말을 할 줄은 아시지만 좀 서툴고, 일본에서 산 세월이 훨씬 길으세요. (한국에서 사신 건 시집살이 하시면서 사신 11년 정도? 시아버님은 토종 한국인). 남편 역시 10살 이후에는 쭉 일본에서 살아서 30년 넘게 일본에서 산지라, 한국 말은 할 줄 알지만 정서와 생각하는 방식이 그냥 일본 사람입니다.


오늘 시댁에서 저녁 식사 때 벌어진 일입니다...
시아버님이 한국에 가실 일이 있어서 저와 남편, 시어머님 셋이서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티비를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밥은 먹는둥 마는둥.. 어른들 우선 편히 식사하자며 애들은 티비시청을 하게 하고 어른들끼리 얘기하며 식사중이었습니다.

술버릇 얘기가 나와서 얘기를 하다가 울 남편이 자기는 술을 마시면, 정신이 풀려서인지 졸려진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어머님이 그게 좋은거 아니냐며, 괜히 술마시고 주사 부리는 것보다 그렇게 곱게 자주면 자기는 너무 좋을 것 같답니다. 그런데... 저희는 애가 둘이고, 심지어 지금 셋째 임신중.. 저녁 식사 준비도 제가 하고, 밥 다 먹으면 테이블 치우는 것도 제가, 설거지도 제가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반주라도 해서 피곤이 몰려와 자버리면, 먹은거 다 정리하는거 + 애들 씻기고 재울 준비하는 것도 저 혼자 다 해야합니다. 그래서 전 남편이 술마시고 졸려지는게 너무 싫어요ㅜㅜㅜㅜㅜ 그래서 그런 얘길 했더니...

그래도 자기 아들은 매달 월급은 꼬박꼬박 갔다주지 않냐는 시어머니... 그러면서 "그래도 이만한 남편이 어디있어~!"랍니다. 저희 시아버지가 자기 분에 못이겨 일찍이 직장을 떼려치시고 무일푼으로 40대를 보내시면서... 시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셨었거든요... 근데 그건 당신 남편(시아버지)께서 일반적이지 않은 케이스인거지... 대부분은 남편이 월급을 잘 가져다주잖아요? 그런데 남편이 매달 월급을 갖고와주는게 뭐 엄청 대단한 것 마냥 말씀하시길래.. 저도 좀 기가 차서...

그래도 내 한국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솔직히 울 남편은 집안일 하는 축에 속하지 않는다. 한국 남자들은 엄청 부인 집안일 도와준다더라, 라고 했더니...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남의 남편이랑 자기 남편을 비교하는건, 바보가 하는 짓이야"라고 한국말로 말씀하시는 시어머니-_-
바보...?

그러면서 일본인들은 그렇게 친구들끼리 모여서 얘기해도 남편욕하거나 남편 흉보는 얘길 잘 안한다나? 그래서 그런거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남의 남편이랑 비교하는건 바보라며ㅋㅋㅋㅋㅋㅋㅋ 참내.

M짱(우리 도련님 부인, 일본인)은 일본 사람이니까 물론 자기 앞에서 자기 아들 흉보는 그런 일이 없겠죠? 그리고 그렇게 자기 아들이 여러번 직장을 때려치고 대책없이 나와도, 자기 아들을 먹여살려주겠다고 하는 착한 며느리인데, 그에 반해 저는 '월급 따박따박 갖다주는 착한 내 아들을 욕하는 나쁘고 바보같은 며느리'로 비춰지나 봅니다. 그래서 가끔 대우하는 거에도 차별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자기 아들 흉(?)을 보는데, 며느리 편 들어주면서 "그래 너가 힘들겠구나. (아들) 니가 며느리 좀 더 많이 도와줘라."라고 말해주는 천사같은 시어머님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냐마는... 아니.. 제가 작정하고 흉보려고 한 것도 아니고, 얘기를 하다가 그런 쪽으로 흘러서 내가 지 아들 흉을 좀 봤기로서니... 자기 아들 옹호하기만 바쁘고... 내 마음은 읽어주지도 않고...
과연 당신 딸이 결혼해서 그렇게 살고 있어도 그런식으로 대답할 수 있을지(남의 남편과 비교하는 니가 바보라고) 궁금해졌습니다. (참고로 시어머님의 따님은 마흔이 넘었지만 미혼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이제 어머님 앞에서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거였어요... 나만 상처 받고... 내 마음은 위로 받지도 못하고, 상대방에게 안좋은 이미지만 심어주는 꼴이 되어버리니... 득이 될게 하나도 없다는 결론...
저도 나중에 우리 아들 부인이 이렇게 나한테 아들 흉을 보면, 아들을 옹호하고 감싸고 돌게 될까요?

시어머니한테 바보라는 소리를 듣고 울분이 삭혀지지 않아서 몇자 끄적여봤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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