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샘 18년 전
언제부터인가 어버이날이 되면 아이를 둔 부모의 심정으로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되었지요. 우연히 모 빵집에서 본 신문의 한 귀절을 보며 가슴 한 켠에 알 수 없는 찡∼함을 느꼈답니다.
어버이 날 우리 모두 함께 생각하고 한 번쯤 돌이켜 볼 어머니의 마음 같기에 옮겨 보았답니다.
--- 김영수의 영혼르포 『어머니의 마음』 ---
어느 중소도시 외곽의 초등학교 1학년 첫 수업시간. 엄마 손을 잡고 오늘 갓 입학한 병아리 신입생들. 아이들보다 어머니들이 더 설렌다. 담임 선생님이 학부형들에게 쪽지를 나눠주며 말했다.
"자녀들에게 바라는 소원을 하나씩 적어주세요"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선생님이 부모의 협조를 구한 것이다. 모두 돌아간 뒤, 선생님은 쪽지를 하나씩 펴보았다.
'우리 아이는 달리기를 잘 합니다. 멋진 축구선수가 되게 해 주세요.' 군인, 연예인, 대통령, 선생님, 돈 많이 버는 사람..., 그런데 이상한 하나의 내용에 깜짝 놀랐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신다면 제가 제 아이보다 하루 늦게 죽게 해 주세요, 꼭이요.'
이 쪽지를 쓴 어머니의 아들은 자폐아였다. 어머니 당신이 말을 심하게 더듬어서 자식에게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기에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지만, 그래도 중증이 아니기에 위안을 삼았다. 시간이 가면서 이제 '그러려니'하게 될 무렵, 아이의 취학통지서를 받고 다시 절망했다.
'남들에게 놀림을 받으면 어떻게 하나. 만약 내가 죽으면, 저 아이는 ...,'
특수학교도 생각했지만 이 아이는 장차 나 없이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독한 마음을 먹고 다른 아이들보다 처지더라도 그 속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결심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의 증상이 눈에 뜨게 호전되던 것. 중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혼자 등, 하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도 엄마를 학교에 오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는 그 동안 모진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며 하늘에 감사했다.
고등학교 입학식. 어머니는 아들의 입학선물로 벙어리 장갑을 샀다. 어머니는 대견한 아들의 손을 잡으려고 넓은 운동장을 한 걸음에 달렸다. 아들은 어머니를 보더니 반 친구들로 부터 먼 곳으로 데려갔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벙어리 장갑 선물을 건네며 더듬더듬 말했다.
"축...하...한...다." 아들은 선물을 땅에 내던졌다. 선물이 아들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가 싶어 봉지에 주섬주섬 싸면서 물었다.
" ...무...얼...갖...고...싶..." "엄마, 가란 말이야. 친구들이 엄마를 벙어리라고 놀리잖아. 나는 그래서 벙어리 장갑이 제일 싫다고."
아들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 운동장 저편으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머리 위에 하얀 눈이 쌓이도록 한참 동안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들이 장성하여 예쁜 며느리를 얻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자식이 해외여행을 시켜준다고 뽐냈다. 호주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잠시 기다리라던 아들 내외가 몇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화장실이 급했지만 말이 통하질 않아 그만 바닥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공항 경비원들이 어머니를 연행해 갔다.
"할머니, 가족들이 버리고 도망간 거예요. 찾아드릴 테니 이름하고 전화번호, 주소를 알려주세요."
가까스로 한국인임을 알아낸 공항 조사관들이 신원을 확인하려 했으나, 어머니를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내 아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들이 혹시나 연행될지 몰라서였다.
한편, 어머니를 호주에 버리고 한국에 돌아온 아들 내외는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즉사하고 말았다. 고국에 돌아오자마자 자식의 영정 앞에 선 어머니. 그 어머니가 구명시식을 신청했다. 아들 내외의 극락왕생을 비는 자리에서 어머니는 아들보다 더 오래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소망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식 뒷바라지가 아니었다면 어머니 당신의 말더듬이 한 평생이 더 불행할 수 도 있었기에, 결국 자식의 기도를 들어준 하늘에 감사를 전했다. 얼마 후, 어머니의 부고가 전해졌다.
『스포츠 조선』
작가.paanmiso@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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